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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한 도전과 도망: 어느 직장인의 부끄러운 회고

에세이 2024.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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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직장에서 도망치고싶은, 부끄러운 순간들이 있을겁니다.

 

그럴 때 누구는 도망하고, 누구는 인내하며, 누구는 부정하고, 누구는 부끄러움을 모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누군간 극복하고 해내고 맙니다.

 

저는 그 중 도망자였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이 글은 제가 토스에 다녔던 2015년-2016년 두 해, 토스의 극초기에 겪었던 실패의 회고입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이야기를 구태여 꺼내는 이유는, 지금의 토스가 있기 전 막막했던 암흑시대에 어떤 생각들로 임했는지,

 

또한 당시 3년차 스물다섯살 평범한 주니어 직장인이 어떤 실패를 겪고 왜 도망쳤고 왜 후회하는지에 대해, 제 실패 이야기를 통해 단 한분이라도 작은 참고가 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직장에 몸담으면서 먹고 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마치 창업가와 같이 살기를 바라는, 저와 같은 작은 소망을 가진 분들에게 작은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위험한 여정, 적은 임금, 굉장히 춥고 칠흑같은 암흑속에서의 수 개월, 상시적인 위험,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을지 미지수. 성공할 경우 명예와 인정이 뒤따름.

 

 

2015년 저는 네이버와 분할된 NHN이라는 회사의 신사업인 간편결제 서비스 페이코 팀에서 사업개발 업무를 맡아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간편결제 시장이 매우 과열되어 대형 가맹점 하나를 영업해오려면 결제 지원금을 수 천에서 심하면 10억까지 지출하고는 했습니다. 영업력 보강을 위해 PG사 인수까지 진행했지만, 치킨게임으로 인해 확산이 좀처럼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노력으로 뭔가 더 해볼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 이상은 없을까?" 항상 되뇌였지만, 적당히 괜찮은 네임밸류, 맛있는 무료 구내식당, 사내 병원 은행 헬스장 등 최신식 사옥에서 복지를 누리며 적응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아래 글을 페이스북에서 접하게 됩니다.

 

 

 

 

가슴에 울림이 일었고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생소한 앱이어서 다운받아봤는데, 당시 지방은행 몇개만 지원을 하고 있어서 실제 송금까지 해보진 못했지만, 말그대로 정말 '개운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시중은행을 모두 지원하는 뱅크월렛카카오라는 앱이 있었지만, 계좌를 연결하려면 기존 은행의 불편한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해서 실제로는 많이 쓰이지 않고, 기존 은행앱은 상당히 불편하고... 그런 상황이었고, 그에 반해 토스는 1원 인증만 하면 Touch ID(지문)로도 송금할 수 있어 차원이 달랐습니다.

 

 

 

 

13번째 멤버

네이버나 카카오의 13번째 멤버에게 커리어를 묻는 이가 있을까요? 그런데 만약 그/그녀가 첫 두 해 정도 해보다가 "에이 못해먹겠네!" 라며 그만뒀다면?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가슴뛰는 공고에 사업개발(Biz-dev) 포지션이 있어 당장 지원했고, 13번째 멤버로 토스에 합류했습니다.

 

 

당시 독특하게 명함에 캐리커쳐를 그려주시고는 했습니다

 

 

입사 직후 한 일은 간편결제 서비스 기획 경험을 토대로, 토스페이 결제 제품이 실제 시장에 나가도 될 정도로 다듬는 일이었습니다. 제품과 연동 문서등이 어느정도 다듬어지고 입사 다음달부터 바로 결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영업자료

 

 

전 직장에서 간편결제 시장의 치킨게임을 겪으며 영업이 잘 안되는걸 경험했으면서도 토스결제가 잘될거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사용자들이 열광하는 서비스였기에, 그저 결제수단으로써 통로 역할만 하는 다른 서비스와는 차별화 되어 협상력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업 구조도 낙관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송금으로 확보한 유저를 결제로 보내고, 60조 결제시장 중 19조가 현금성 결제(무통장입금, 계좌이체)이니 거기서 절반만 먹고 수수료 1%만 떼도 연에 수백억은 벌겠구나... 싶었습니다.

 

 

 

 

Revenue 담당자로써의 고통의 시기

2015년 가을 쯤부터 웹하드나 웹툰 등 비교적 영업이 쉬운 곳(=결제 수단을 많이 연동해 어떻게든 고객에게 결제를 받아야 하는 곳)들의 아웃바운드 세일즈를 돌았습니다. 그러나 쉬울거라 생각했던 영업은, 2015년 말까지 농협을 제외하고는 지방은행 및 특수은행만 지원되는 상황이었고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메이저은행은 쓸 수 없었기에 생각보다 잘 진척되지 못했습니다. 가맹점 입장에서 은행도 다 안되는데다가, 카드 같은 핵심 결제수단이 아니고, 앱도 다운받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앱 다운로드 수도 아주 많지도 않았어서 생각보다 계약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기 티몬 등 대형 가맹점과도 논의를 하는데, 원가도 못건질 수준으로 불리한 협상이 계속되었습니다. 가맹점의 의사결정이나 연동 속도가 늦어지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개발비 500만원을 요구하는 곳도 있었고, 페이코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앱을 다운로드 받게 하는게 허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시간을 들여 웹결제 제품까지 만들기도 했습니다. "간편송금으로 획득한 고객을 통해 결제로 돈을 번다"라는 명제는 단단했어서, 결제로 돈을 벌기 위해 웹결제, 토스 브랜드를 제거한 White-label 방식의 커스터마이징 웹결제 상품 등 어떻게든 가맹점을 유치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메이저 은행도 안되고, 핵심 결제 수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플랫폼으로서의 단초를 발견하다

인테이크, 무신사(2015년의 무신사는 조그마한 쇼핑몰 이었습니다) 그리고 웹하드 몇개 정도 붙었는데 결제는 별로 없었고... 열심히 만들었는데 거의 놀고있는 토스페이 제품... 이걸 뭔가 활용해볼게 없을까? 라고 생각하다, 컬쳐랜드 문화상품권이 권면가의 5~8%의 할인율로 판매되는것을 평소에 알고 있었어서(당시 뽐뿌 골수유저 였습니다) 정가에 팔면 수익을 꽤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 문화상품권은 거의 현금으로 통용되고 있는 점에서도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문화상품권 발행처인 한국문화진흥에 연락하니, 한달에 5억은 팔아야 그때부터 자동 발송 API를 열어줄 수 있다고 해서, 초기 배민이 해서 허슬 마인드로 스타트업 업계에 화제가 되었던 그 방식(=주문 들어오면 자동인 척 했지만 사실은 가게에 대신 전화해서 주문넣던 시절), 그리고 제 첫 직장인 야놀자에서 야놀자펜션을 공동 창업했을 때 배민 방식을 벤치마킹 했던 경험(=펜션 예약 들어왔는데 사장님이 컨펌을 안해 중복예약이 빈번해서, 전화해서 확정 예약을 대신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토스 앱에 문화상품권 구매 기능을 웹뷰로 넣고 주문이 들어오면 제가 컬쳐랜드 법인몰에서 사다가 문자로 보내드리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하루도 안되서 즉석에서 런칭해봤습니다.

 

 

출처: 유난한 도전(정경화)

 

 

정가에 팔아도 잘 팔릴것이라는 이상한 확신이 있었는데, 역시나 런칭하자마자 너무 잘 팔려서 한달도 안되어 연동 API 계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간편송금에서 활활 타는 Cash burn을 생각하면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플랫폼으로써의 토스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자괴감

상품권 판매는 판매인거고, 회사의 핵심 수익모델은 결제였기에 영업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했습니다. 세일즈 담당자를 추가 채용하기로 했고, 송호진님이 입사했습니다.

 

호진님은 전직장이 NHN으로 저와 같았으나 만난적은 없었고, 증권사 재직 경험 등은 있었으나 결제 서비스에 대한 경험은 전무했습니다. 현익빌딩 끄트머리 회의실에서 승건님과 저와 호진님이 모여 호진님이 생각하는 세일즈 플랜을 들어봤습니다. 교포 출신으로 약간은 어색한 한국어를 구사하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의 계획은 정리하자면 "대/중/소형으로 나눠 리드를 열심히 수집하고 기계적으로 영업해보자" 정도였는데, 그건 이미 그렇게 하고있었기도 하고 리드 수집할 시간에 기존에 컨택포인트를 많이 가지고 있는 PG업계 출신 베테랑 경력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승건님에게 "우리에게 필요한건 경험 많은 노련한 Sales person이다. 호진님은 아닌 것 같다" 라고 우려를 쏟아냈습니다. 승건님은 믿어보자고 했습니다.

 

 

출처: 유난한 도전(정경화)

 

 

토스팀의 이야기를 담은 '유난한 도전' 책에도 나와있는데, 호진님이 몇 달 후 Financial projection 엑셀 파일을 공유해주었는데, Best/Worst 시나리오에 따라 뭔가 숫자를 넣으면 휙휙 바뀌는 마법같은 신문물이었고, 결론은 제 아무리 좋아도 돈 못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

 

승건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제품을 만들고 사용자를 모을 줄만 알았지, 재무적인 예측(P&L)을 하고 CF(Cash flow)를 계산하고, 엑셀로 여러 변수에 따라 휙휙 바뀌게 만들고... MBA나 금융권 출신이라면 저런것에 익숙하겠지만, 당시 토스팀에는 없던 역량이었습니다.

 

아니 당연히 생각을 했어야 하는건데 왜 못했지?

 

스타트업이 많아지고 VC들도 많아진 최근에야 방법론들이 잘 전파되어서, 시드 라운드 스타트업들도 기본적으로 모델링 정도는 다들 하는데, 2015년 당시는 쿠팡 정도만 과학적으로 회사를 굴렸던 것 같습니다.

 

승건님은 경영자니까 경영자대로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하며 충격을 받았고, 저도 역시나 토스페이 사업을 하기 위해 입사했고 반년 이상 토스페이 제품을 열심히 팔고 안팔리는걸 체감하면서도, 그저 메이저 은행이 안되니까 안팔리는거야 정도로 치부하고, 메이저 은행 들어오면 되겠지, 앱을 깔아야 하니까 안될거야! 라며 아무도 안쓰는 웹결제 서비스 만들어서 트릭으로 풀려고 노력했고...

 

보다 근본적인 핵심 질문, 이게 진짜 한달에 수 억 쓰는 간편송금 Cash burn에 도움이 언제 되는건지, 실질적으로 얼만큼 회사의 이익에 기여하는건지에 대해선 생각도 안하고 무지성으로 영업 확대에만 골몰했던 자괴감과 쪽팔림이 몰려왔습니다.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난 머저리인걸까?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진짜 너무너무 자괴감이 들었고 강력한 퇴사 욕구가 밀려왔습니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고, 개인의 오판이 아니었으며, 팀 전체의 Company-wide한 측면에서의 학습과 경험의 부족이었으나,

그땐 제 스스로 되려 제 자신을 과대평가했기에 제 개인의 실패로도 여겼었던 것 같아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이죠.

 

이때 솔직히 도망가고 싶어서 다른데와 얘기를 한 곳 했는데, 실제로 이직하진 않았지만, 아마 이때 승건님도 제 마음이 한번 떴음을 알았던 것 같아요.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홧김에 이직 얘기를 어디서든 함부로 꺼내지 마세요. 업계 많이 좁고, 대표님들은 듣는 귀가 특히 많아요. 대개 창업가들은 이런저런 배신을 당한 경험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인간적인 의리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그들의 편

토스는 그때 결제 사업에 올인하는걸 잠시 멈추고 대출을 포함해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로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당시엔 PO라는건 없고 사일로와 담당자만 있었습니다.

 

 

대출 사업을 직접/간접 2가지 방식으로 풀어보기로 했는데, 직접 대출을 해주는(여신 자회사를 만들어 대출을 내어주고 자금은 외부에서 펀딩받는) 방식의 사업은 승건님이 주도하기로 했고, 저는 결제 사업을 롱텀으로 가져가면서 은행 및 금융사와의 제휴 상품을 개발해 돈을 버는 역할을 맡기로 했습니다. (1년 뒤 해당 소액 대출 상품은 출시하자마자 대부업 이슈로 접어버리는 일이 생겼네요...)

 

그렇게 오래된 파트너인 부산은행, 전북은행, 대구은행 등 지방권을 싹 돌면서 반년 정도를 보내며 관계도 맺고 낮술도 마시면서(은행원들은 은행을 불문하고 전통적으로 낮에 반주를 살짝 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또 시간이 지연되어 갑니다. 토스페이의 악몽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은행의 카운터파트는 대개 디지털금융부였는데, 이곳은 디지털 채널을 관리하는 곳이지 여신 상품을 직접 개발하는 곳이 아니다보니 여신상품부와 다시 한번 논의해야 하고, 상품 개발 담당자는 상품을 만들 뿐 리스크나 CSS 정책은 개별 부서와 또 협의해야 하고, 이해관계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시간은 지연되고...

 

제가 다음 직장인 인터넷전문은행에 다녀보고서야 상품 개발에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이해가 되었지만(=내부적인 협업과 더불어, 규제산업인 은행의 특성상 고려되어야 하는 내용(신용리스크 등)도 많고, 금융당국에 신규 상품에 대한 보고까지 해야함), 당시만 해도 "아... 은행원들 진짜 답답하네...", "본인들은 아쉬울게 없으니까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끄는거겠지?" 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제품팀에서는 경험을 획기적으로 개선해나가면서 점점 많은 유저와 은행, 경이로운 Viral K 등 성공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반면, 수익 담당자로써 페이먼츠 사일로, 은행 프로젝트 사일로를 담당하면서, 온라인 가맹점이 채택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페이먼츠, 은행이 상품을 개발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은행 프로젝트... 둘 다 원하는 속도 만큼 안되고 있었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역삼역 현익빌딩에서 나와 무작정 걷다보니 강남역 사거리까지 가있었습니다.

정말... 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은행들과의 사업들이 1~2년 뒤 자산이 되어 토스 사업의 근간들을 이루었지만, 제 마음은 많이 조급했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2016년 가을 쯤이었어요. 토스팀은 카카오페이와도 경쟁하면서, 새롭게 시장에 진입한다는 카카오뱅크의 등장에도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카카오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옵니다.

 

카카오 은행 컨소시엄의 담당자였는데, 핀테크 업계를 만나 제휴할만한 일이 있을지 의향을 물어보고 있었어요. 저는 그간 은행들을 만나며 쌓여왔던 울분들을 쏟아냈습니다.

 

두어달쯤 뒤 연락이 다시 왔는데, "그렇게 답답하면 직접 만드는 경험을 해봐요", "살면서 은행 만드는 경험을 해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라며 이직을 권유했습니다.

 

거의 2년여간 남이 결정하는 운명(=가맹점은 토스페이 안붙이면 그만, 은행제휴상품은 은행이 안만들어주면 그만)에 번아웃이 왔었는데, 은행의 상품을 직접 만들어 보라니...

 

전화 받자마자 생각도 안하고 선뜻 알겠다고 해버렸습니다. 경솔했습니다.

 

그때 잠깐만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토스에 왔었던 순수한 초심, 미친듯한 사용자 경험을 다시 떠올렸다면 어땠을까요? 성공할 경우 명예와 인정이 뒤따른다는 가슴을 울렸던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면...

 

그 어떤 제안을 받더라도 단박에서 결정하지 말고, 내색도 하지 말고,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결정을 보류하세요. 

 

초기멤버로써 감사하게도 좋은 수준의 스톡옵션과 사이닝 보너스를 부여받았기도 했는데, 스스로의 안에서 우러나는 동기부여가 많이 떨어진 번아웃 상태였기에, 자발적 퇴사시 전액 반납해야하는 스톡옵션이나 사이닝 보너스 같은건 일말의 고려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No... No... No...

 

 

승건님에게 곧장 커피 한잔 하자고 하고 현익빌딩 지하 1층 카페로 갔습니다.

 

"저...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퇴사해야할 것 같아요."

 

승건님은 살짝 당황한 눈치였지만 이내 그러냐고, 알겠다고 했습니다.

차 한잔 다 마시기 전에 이야기는 끝났고, 민망하게 사무실로 돌아왔어요.

 

이윽고 당시 토스 인사팀장이셨던, 플렉스 창업자 장해남님이 미팅을 요청했어요.

GFC 지하 클로리스에서 그는 저를 극구 뜯어말렸습니다.

 

"아니 재한님, 충분히 생각해본거에요?"

"먼저 나한테 얘기해보지... 아유"

"제가 보기엔 이건 아니에요. 선배로써 말이에요. 무조건 나중에 후회할거에요. 제가 승건님에게 잘 말해볼테니 마음 돌려볼래요?"

 

정말 감사한 말씀이었습니다.

 

50:50... 아니 사실은 90:10 정도로 잡아주길 바랬습니다.

이제 돌이켜보면 "나 지칠대로 지쳤으니 위로좀 해주십쇼" 라는 마음을 가진 주니어의 서투른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해남님에게 알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퇴사를 했습니다.

이미 1차 위기때 마음이 살짝 뜬걸 승건님은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경영자의 입장에서, 한번 마음이 뜬 사람을 다시 붙잡아봤자 뭐... 신뢰가 흔들려 다른 곳을 보는 사람을 다시 보기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야 이해합니다.

 

 

 

 

 

 

 

 

그렇게 2016년 11월 말 저는 테헤란로를 떠났습니다.

 

 

 

 

 

출처: 유난한 도전(정경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들은 이름이 기억되고, 저 같이 제 풀에 지쳐 중도 포기하고 도망간 사람은 단지 한 명으로 기억될 뿐입니다. 흔적을 남기고 싶다면, 도망가지 마세요.

 

내 역량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는 좌절과 실패의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있을겁니다.

 

그러나 이제금 되돌아보니,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는 못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창업자도, 경영자도, 투자자도, 그 누구도요.

 

힘을 좀 빼고, 역량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당장은 부끄러워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남의 밝은 면과 장점을 흡수하고, 내 단점에 대해 고뇌하기 보다는 장점을 꺼내 극대화하셨으면 합니다.

 

조언을 구하는것에 자존심을 부리지 마세요.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고, 나누세요. 그게 누구든 기꺼이 들어줄겁니다.

꿈을 가슴에 품고 들어왔다면 끝까지 가보세요.

 

이때의 경험은 힘들면 솔직하게 털어놓고 잠시 쉬어갈줄도 아는 약간의 경륜도 가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더 이상 해볼만한게 없을 정도로 노력하는 신뢰 자산을 쌓았다면 동료나 경영진이 가만 두지 않을겁니다. 도와줄겁니다. 같이 해결해줄것입니다. 도망가지 마세요.

 

 

 

 

마음의 빚을 갚다

카카오뱅크에서는 중도에 포기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예비인가부터 상장까지 4년을 다녔습니다. 제게 주어진 소임을 다 하고 후회없는 4년을 보냈어요.

 

 

인터넷전문은행 창업기: 카카오뱅크

카카오뱅크의 타임라인 일자 내용 2015년 6월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방안 발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2015년 10월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접수 2015년 11월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완료 (한국

jaypark.me

 

 

토스 퇴사하고 당시 같이 고생했던 동료들과 연락이 뜸해졌어요. 제가 연락을 못했죠. 가끔 생각 나고 밥 한끼 하자고 하고 싶었는데, 스스로 도망친 부끄러움으로 차마 연락하기 너무 민망했어요. 가끔 테헤란로를 지날때면 커피 한잔 하고싶었지만, 면목이 없었어요.

 

그러던 1년쯤 뒤인 2017년 말 쯤 승건님에게 문득 카톡이 왔어요.

"재한님 카뱅갔다고 들었어요. 옛 정 생각해서 토스좀 잘 부탁해요."

 

 

카뱅 런칭 후 대외 펌뱅킹 연동이 안되어 2018년 초까지도 카카오페이에서도 카카오뱅크 계좌 연결과 송금이 불가했었습니다. 그런 마당에, 별 명분도 없이 토스 먼저 붙일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시스템 부하 테스트로 인해 순서대로 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전략팀의 제휴 담당자였기에 카카오페이 다음으로 토스가 될 수 있게 이런저런 노력을 했고, 계약될 수 있게 하면서 토스에 졌었던, 포기하고 떠났던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